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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우 생태에세이】 푸름에 홀릭…chapter 01. 먹는 자 먹히는 자:골든타임즈

【이지우 생태에세이】 푸름에 홀릭…chapter 01. 먹는 자 먹히는 자

■ 새 둥지 속에서 무슨 일이

2022-07-17     이지우 작가
▲ 이지우 작가약력:『현대수필』 수필등단, 『시현실』 시등단저서: 생태에세이『푸름에 홀릭』2쇄

 

 

나무는 봄부터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병충해 등을 견디며 길게는 수십 년에서 수천 년의 나이테를 키운다.

가을이 되면 단풍의 절정에서 고생한 자신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라도 하듯이 나뭇잎을 한 잎 두 잎 떨어뜨린다철저히 겨울 준비가 끝났기에 미세한 바람도 마다하지 않고 나무와 이별도덜어내기 작업도 과감하게 한다마지막까지 자연에 돌려주기 위한 작업이기에 소리 없이 최선을 다한다이런 모습을 보다 자신도 모르게 위대한 자연 앞에 고개가 숙어진다. -저자 머리말 중에서-

 

 

 

 

 

새 둥지 속에서 무슨 일이

 

 

현절사 옆 계곡 주변에는 물가에서 잘 자라는 귀룽나무가 많았는데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하얀 꽃을 피워 봄의 향기를 맘껏 뿌리고 있다.

 

이곳은 새들에게 알맞은 환경을 모두 갖추고 있다. 습한 것 빼고는 경치가 아름다워 나도 이곳을 자주 찾는데 또 다른 이유는 시아버님이 현절사 연구 발표와 현절사라는 책을 출판하셨기에 남다르게 애정이 간다.

 

오늘은 봄기운을 받으며 포란 중인 다양한 새를 현절사 근처에서 인공둥지를 열어보며 새를 관찰하는 날이다. 새들 영역을 침범한 사람의 인기척에 놀란 새들이 나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쉼 없이 지저귀며 경계 태세를 한다.

 

 

 

 

 

동고비 일가족의 죽음

 

 

우리는 봄기운을 느끼며 남한산성 새 지킴이의 지시만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첫 번째 둥지를 조심스럽게 열어본 지킴이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짐작으로 무슨 일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혀만 쯧쯧 차고 있다. 하나둘씩 모여들은 회원들도 둥지 안을 들여다보고 표정이 모두 하얗게 굳는다.

 

인공둥지 안에는 동고비 암컷이 9개의 알을 지키다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마지막 죽어가면서까지 알을 품으려 했던 동고비의 모성애에 모두 할 말을 잃고 동고비 일가족 몰살 참혹사를 다 같이 지켜보고는 어떡해란 말만 되풀이하며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서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시간이다.

 

하필, 귀룽나무 사이로 햇살이 자유롭게 들락거린다. 너무 아름다워 야속하기만 하다.

 

 

 

 

 

또 다른 둥지를 열다

 

 

첫 번째 둥지를 관찰 후 다시 나무에 매달아 주고 장소를 이동해서 두 번째 둥지를 열었다. 이번에는 박새의 알이 수북하다. 박새는 주로 마을 담장의 작은 틈에다 집을 짓고 살면서 사람들과 친하게 사는 텃새인데 인공둥지에다 알을 9개나 낳고 포란 중이다. 동고비와는 알의 크기는 비슷하나 점점이 찍힌 연한 붉은 색의 패턴은 동고비알과 조금 다르다. 둥지 안에 박새가 없어 편하게 알을 관찰하고 다시 나무에 걸어 주었다.

 

세 번째 둥지를 열었다. 그 안에 곤줄박이 암컷이 알을 품은 채 둥지를 지키고 있다. 둥지를 건드리자 나무 주변에 있던 수컷이 우리 머리 위로 왔다 갔다 하며 마구 짖어댄다. 우리를 본 암컷은 알을 품은 채 사나운 표정과 날개를 곤두세우고 부리로 우리를 향해 마구 공격한다. 알을 헤칠까 봐 꼼짝도 안 하고 앉은 자세로 쉼 없이 공격하다가 이내 밖으로 날아가 수컷과 합세해서 나뭇가지에서 우릴 지켜보며 계속 울어댄다. 나는 어미를 안심시키게 빨리 둥지를 제자리에 걸어 주자고 제안했다.

 

속으로 탐조에 대해 갈등하고 있는 나를 본다. 이것은 분명 새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인간중심의 관찰과 탐조라는 행동이 새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지켜주는 게 아닌 지나친 간섭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탐조 후 내려오는 길에 처음에 열어본 동고비의 둥지가 생각난다. 둥지 속 동고비가 계속해서 나를 따라 내려온다. 차갑게 식은 어미 동고비는 마지막까지 알을 품다 하늘나라를 간 모습이기에 더욱 긴 여운에 안타까웠다. 어디서 몹쓸 것을 먹고.

 

 

 

귀룽나무의 하얀 꽃비가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다 땅에 추락한다. 이미 떨어져 흩어진 꽃잎을 바라보며 씁쓸한 마음을 가라앉힌다.